

“경감님.”
“네?”
“... 우리, 결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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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은 테이블 너머에서 입술을 꾹 다물고 있는 시목을 바라봤다. 이 사람을 볼 때면 늘 뒷배경은 사무실, 사건 현장, 골목 식당과 같은 조잡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오늘은 달랐다. 아무런 기념일도 특별한 날도 아닌 오늘, 차려입을 시간도 주지 않고 무작정 데리고 온 레스토랑. 고급진 레스토랑을 배경으로, 평소보다도 더 격식 있게 차려입은 애인이 영 이질적이라고 여진은 생각했다.
침묵 속에서 식사를 마친 여진은 시목을 빤히 바라봤다. 식사를 하면서도, 식사를 하기 전에도 여진은 시목을 관찰하고 있었다. 시목의 다음 행동을 보채기라도 하는 듯, 무슨 행동을 할지 다 안다는 듯 여진은 시목을 빤히 바라봤다. 이것은 뛰어난 형사의 관찰력, 혹은 직감에서 기인한 추리가 아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맥락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한여진 경감이 아니더라도 다 눈치챘을 것이다.
꽃다발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품에서 꺼내는 편지봉투, 그리고 만날 때부터 눈에 띄었던 볼록한 주머니.
의아한 점은 없었다. 여진이 했던 말을 듣고 준비한 것이 분명했다. 이것은 어찌 보면 애처로울 정도로 명백했다.
‘응? 뭐야, 이렇게 갑자기요? 꽃다발도 없고, 편지도 반지도 없는데?’
그저 연인 사이에 넘치는 사랑을 주체하지 못해 내뱉는 말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여보야, 우리 결혼할까? 우리 꼭 결혼하자. 으레 연인들이 우스갯소리로 나누곤 하는 말들. 그래서 웃으며 가볍게 넘겼던 말이었는데. 혹시라도 가볍게 뱉은 말이 그의 결핍을 건드렸을까 신경 쓰였다.
“경감님.”
어색하게 편지를 내미는 시목의 손짓을 따라 여진의 시선이 편지 봉투로 향했다. 봉투의 겉면에 적힌 거라곤 여진과 시목의 이름 세 글자뿐인데, 청첩장이라도 되는 듯 받아들기가 조심스러웠다.
“이런 건 또 언제 썼대...”
시목의 시선을 느끼며 여진은 편지 봉투를 뜯었다. 정갈한 그의 글씨체로 용의자의 이름이 아닌 자신의 이름을 보는 것은 생각보다 간지러운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검사님이 지금껏 나한테 편지 써 준 적이 한 번도 없구나. 하긴, 나도 쓴 적 없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편지의 첫 줄에 시선을 두었던 여진은 심장이 쿵,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사랑하는 여진 씨에게.
제5공화국처럼 꼬박꼬박 어디든 직장인 것처럼 굴었으면서 이런 때에 이렇게 호칭으로 한 방 먹이다니. 내용이 낯간지럽다고 농담이라도 던져보려 했건만, 상단에 적힌 수신인이 문턱이라도 되는 듯 그 아홉 글자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편지에 머물던 시선을 위로 올리면, 줄곧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연인이 눈에 들어찼다. 무덤덤한 표정 너머에서 울렁이는 눈빛을 여진은 볼 수 있었다. 답지 않게 엇갈리는 시선, 눈에 띄게 꾹 다물린 입술. 오늘따라 긴장한 듯한 모습은 또 새롭게,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레스토랑 내부는 각 테이블의 대화 소리로 여백이 없었으나, 여진과 시목의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여진은 애써 무슨 말이라도 해 보려고 했지만 마음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차갑지 않지만 마냥 포근하지도 않은 적막을 깬 건, 시목이 건넨 꽃다발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였다.
“아, ... 고마워요. 예쁘다.”
꽃다발을 받아든 여진은 반사적으로 꽃향기를 맡았다. 화사하고 향긋한 꽃은 저절로 미소가 번지게 했다. 그리고 그 작은 미소를 크게 번지게 한 것은 시목의 다음 행동이었다. 제 앞에 내밀어진 반지를 보면서, 여진은 결국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 웃음은 시목이 내민 반지 때문이 아니라, 반지를 내미는 시목 때문이었다.
“으응, 이것도 예쁘네.”
“마음에 드십니까.”
“그럼, 누가 주는 건데요.”
사실 여진에게 프러포즈에 대한 로망같은 건 없었다. 꽃다발이든, 반지든, 프러포즈든 결혼이든. 해도 그만이고 안 해도 그만인, 우선순위 밖의 일이었다. 하지만 전형적인 일련의 행동들과 전형적이지 않은 사람의 조화는 우습게도 사랑스러웠다. 이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닌 황시목이 이것들을 준비했을 것을 생각하니 웃음이 밀려나왔다. 머리로 행동했을까, 마음으로 행동했을까. 머리가 먼저 움직였을 테지만 마음이 따르지 않았다면 행동으로 옮기지도, 끝맺지도 않았을 것이다. 확실히 황시목이라는 사람과는 동떨어진 ‘이벤트’였기에 웃음은 더욱 빠르게 번졌다. 이 모든 행동의 동기가 된다는 것은 아무리 차치하려 해도 행복한 일이었다.
“죄송합니다. 어떻게 하면 로맨틱한 건지 잘 몰라서. ... 이렇게 하는 거 맞습니까.”
“네, 맞아요. 사랑하는 시목 씨?”
“... 네.”
“이 반지는, 주기만 하고 끼워주진 않을 거예요?”
“아,”
반지는 거짓말처럼 여진의 약지에 딱 맞았다. 물론, 반지는 주인 손가락에 끼워져있는 날보다 반지케이스에 고이 모셔져 있는 날이 더 많을 것이다. 그 사실은 반지를 준 사람도, 반지를 받은 사람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지를 선물한 것은 자신의 연인이 형식적으로나마 남들보다 부족하지 않기를, 남들과 다르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지 선물이 고맙고 애틋한 것은 자신의 연인이 보통 때와 달리 결과나 이득을 계산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만을 생각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리고,”
“네.”
여진이 말하기를 기다렸다는 듯 바로 대답하는 시목은 여진의 눈에 한없이 소중하고 사랑스러웠다.
“또 할 말 없어요?”
또 한번 아, 하며 입술을 가볍게 축인 시목은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경감님.”
“네.”
“... 우리, 결혼할까요.”
시목을 바라보는 여진의 얼굴에 또다시 미소가 피었다.
이 사람과 결혼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나를 직업적으로 인정해주는 사람’, ‘나를 인간적으로 무시하지 않는 사람’, 무엇보다도 ‘나를 사랑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므로.
“검사님.”
“네.”
“이런 거 안 해 줘도, 부족하다고 생각 안 해요 나는.”
“... 네.”
“이런 거 해 준다고 더 이상 바라는 게 없는 것도 아니구요.”
“네?”
“결혼 못 무른다구요. 말 바꾸기 찬스같은 건 없다는 겁니다, 황시목 검사님.”
“... 그런 찬스같은 거 필요 없습니다.”
“으응, 진짜?”
“네. 진짜.”
“흐흥. 좋아요, 황시목 씨.”
해요, 결혼.

